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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느낀 것들

어머니

Ummae~@ 2018. 6. 17. 20:43

내가 알고 있는 어머니는 경상도분으로 말수가 적으시며 지조 있으시고, 꿈은 공무원인 남자와 결혼해 작은 식당을 운영하시는 것이 전부인 소박하신 분이다.


너무 오래되어 출처를 찾지 못했네요

젊은 나이에 서울에서 간호사로 일하시던 어머니는 20대 초반, 그 나이대 분들이 그랬던 것처럼, 군무원이셨던 아버지와 결혼해 시골로 내려와 식당을 운영하셨다. 식당은 잘됐고, 한가한 주말이면 좋아하시던 사이먼&가펑클 앨범을 들으시며 행복해하시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행복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지의 수입과 어머니가 하시던 식당의 수입이 꽤 됐던지라 어릴 적 우리 네 식구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행복하게 지냈다. 동갑내기 하나 없고, 한 살 많고 적은 친구 두 놈이 전부였던 작은 동네에서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놀거나 좋아하던 책을 읽었던 나에게도 부족한 것 없이 행복하게 지내던 시절 같다. 그때가 아마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걱정, 고민 없이 행복하게 지냈던 시절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의 술값 문제로 빚이 조금씩 늘어갔고, 어머니가 운영하던 식당 수입도 줄어들 무렵, 어머니의 얼굴엔 그늘이 생기기 시작했다. 힘들게 식당을 운영하시며 홀로 빚을 갚아가시던 어느 날, 어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병원에 도착한 시간도 늦었고, 병원에서도 2차 뇌출혈이 일어나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한쪽 몸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시다. 그때가 마흔 무렵이셨다. 사춘기 무렵 어머니 속만 상하게 하고 옆에서 힘이 돼주지 못한 내가 너무 밉고, 슬퍼서 잘 때마다 혼자 눈물을 훔쳤다. 병원에서 날 못 알아보던 어머니를 보며 울었던 기억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가 대학에 간 뒤에 집에서 용돈을 받을 처지가 아니었다. 신입생 때, 그 당시 살아계시던 할아버지가 용돈을 조금 보내 주셨던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그것도 머지않아 받지 못했다. 방학 때는 매일 인력소를 나갔다.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다. 따뜻한 물이 나오고 바람 들지 않는 집에서 공부만 하고 싶다는 게 그때 내 소원이었다.


그러는 동안 20년 가까이 살던 고향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 경매에서 팔린 집 값으로 빚을 갚은 후 그 옆 동네로 이사했다. 우리 가족의 삶이 몇 막으로 구성된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때부터 새로운 막이 시작된 것 같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신용불량자라서 신용회복위원회에 매달 얼마씩 돈을 내긴 했지만 큰 빚을 다 갚았고, 불교를 믿으시던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시며 정신적으로 많은 안정을 찾으신 것 같았고, 아버지는 다시 일을 다니시며 가족을 조금씩 돌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가족은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야말로 작은 시골집(동네도 시골이긴 하지만)에서 사는 우리 가족은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함 없이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살고 있다. 어머니는 매일 교회를 다니시며 집안일을 돌보고 시간이 남을 때는 불편한 몸으로 집 앞 작은 텃밭을 가꾸신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버지가 가족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돌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20살. 홀로 집을 떠나, 대학에 입학해 대학원까지 마치고 서울에서 직장을 다닌 지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어머니의 시간도 그만큼 흘렀다. 한해 한 해가 지날 때마다 늙어 가는 어머니 모습을 보면 가끔씩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는 가슴 한켠이 쓰리다. 더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오늘 종일 밖에 있다가 오후에 집에 돌아왔는데, 마침 어머니가 삶은 밤과 대추를 한 가득히 채워 보낸 상자가 택배로 도착했다.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전화를 하고 저녁 대신 먹었는데, 문득 이맘때가 어머니 생일인 게 생각났다. 매번 동생이 연락을 해줘서 내가 날짜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동생에게 물어보니 며칠 전 어머니 생일 때, 연락하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내가 요즘 바빠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할 것도 많을 텐데 연락하지 말라고 말려서 얘기를 못 했다고 한다. 부모님 생일이 수십수백 개가 되는 것도 아닌데.. 그거 하나 기억 못 해 챙겨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송스러워진다. 다시 전화해서 미안한 마음에 뭐 필요한 것 없으시냐고 여쭈니 올해 치과 치료도 다 해줬는데, 뭘 더 해주시냐며 됐다고 하신다.


작은 오디오 하나와 사이먼&가펑클 앨범을 잔뜩 구해서 집에 보내야겠다.


- 2012년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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